백수가 된 지 3개월 반이 지났다.

두 달은 에너지 바닥 난 육체와 정신을 수습하느라 다른 곳에 취업할 엄두도 못 내다가,
석 달째부터 슬슬 리쿠르팅 사이트를 기웃거리면서 갈만한 업체를 Search하는데..

40대 중반을 달리는 나에게 .. 문을 열어주는 회사는 그리 많지 않다.

입사지원이야 지원 버튼을 누르면 쉽게 되니, 지원한 회사는 수십 군데이지만,
개발 경력을 떠나 일단 나이에서 일단 제쳐두는 듯 하다..

몇 군데 업체에서 연락이 왔고, 인터뷰를 하고,
많은 회사에서 퉤짜를 당하고, 어떤 회사는 내가 퉤짜를 놓고..

리쿠르팅 해 본 지가 10년 전이니,
나이가 든 만큼 세상은 더 변해있었고, 그 변함은 더 나쁜 쪽으로 변해 있었다.

어떤 바이오 업체에 PT 인터뷰까지 가서 최종 합격했다.
인터뷰하고 결과 기다리는 것만큼 피말리는 일도 없다.

첫 출근..

그 전 주말에, 가족들과 아빠의 출근을 축하하기 위한 일일 여행도 갔다오고,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도 가다듬고 출발한 첫 출근은 무거운 발걸음을로 되돌아야 했다.

바이오 업체라 여기저기서 주목을 받고 있었고, 나름 괜찮다고 판단도 되고, 자랑삼아
돈 싸들고 투자하겠다고 오는 사람도 있다고 했는데.. 그래서, 스톡옵션이나 우리사주에 대해 내심 기대도 했었는데..

출근해 보니, 우호적 투자자도 있었으나 창투사에서 투자하면서 박아놓은 관리부 상무가
회사 분위기를 옥죄고 있는 상황이었다.

창투사 = 사채업자 = 사기꾼... 내 머리속에 거의 등식처럼 박혀버린 경험들..
몇 년후 코스닥 상장을 목표로 직원들은 저녁 10시까지 거의 퇴근도 못하고 일하는..
관리부는 지문인식기로 직원 하나하나의 출퇴근 시간까지 체크하고 있었다. 

야근 비용은 못주겠는데.. 다른 근태와 사규는 철저하게 지키겠다는 관리부 상무..
그리고, 미국에서 20년 살고 온 CEO의 생각은 80년대의 우리나라 수준에 맞추어져 있었다. 

스톡옵션과 우리사주에 대해서는 결국 .. 주주의 이익이고, 직원들은 연봉과 인센티브가 그 고생의
댓가의 전부인 것이였다. 바이오 벤쳐 업체에 대한 작은 욕심, 스톡옵션, 우리사주, 고생에 대한 보상..
이런 것이 무너진다.

기업 사냥꾼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 있는 나로서는 관리부 상무가 나중에 상장이나 회사의 이익에 대해서,
과연 직원들과 함께 그 열매를 나눌 지, 아니면 주주들과 그 이익을 나눌 지 의심스러워 보였다.

물론, CEO는 직원과 나눌 가능성은 보았지만 그것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고, 미국식 사고 방식이
박혀 있는 그로서는 기업의 이익은 주주의 몫이라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리라.. 회사 홈페이지에도
주주 이익 극대화가 박혀 있으니 말이다.

나이 들어, 리쿠르팅을 해보니, 자본주의의 비정함을 절실히 느낀다.

죽도록 고생해서, 얻은 결과는 죽지 않을 만큼의 연봉과 인센티브고,..
달고 달은 수익은 돈을 투자했던 주주의 몫이라는 것을 .. 알고는 있었지만 피부로 느끼니 세상 참 각박하다.

결국,

첫 출근 후 깊은 번민의 밤을 보내고, 이틀 째 출근해서는 담당 이사와, CEO와의 긴 면담을 끝으로
입사를 포기했다.

아직 작년의 그 끔찍했던 기억들에 대해서 회복이 덜 되었을까?

출근 지하철에서 보았던 표정을 잃은 많은 사람들. 피곤한 얼굴들이 .. 나에게 아프게 다가온다.

좀더..

마음의 무장이 더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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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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